바람속을 걷는 법
- 이정하 -
바람이 불었다
나는 비틀거렸고
함께 걸어주는 이가 그리웠다
바람 불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아니다
그래. 산다는 것은
바람이 잠자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
그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.
바람이 약해지는 것을 기다리는게 아니라
그 바람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
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것
바람이 드셀수록 왜 연이 높이나는지
이른 아침, 냇가에 나가
흔들리는 풀꽃들을 보라
왜 흔들이는지, 하고많은 꽃들 중에
하필이면 왜 풀꽃으로 피어났는지
누구도 묻지 않고
다들 제자리에 서있다
이름조차 없지만 꽃 필 땐
흐드러지게 핀다. 눈길 한 번 안주기에
내 멋대로, 내가 바로 세상의 중심
당당하게 핀다
그대여,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
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
오늘도 어김없이 집 밖을 나섰습니다
마땅히 할 일이 있는것도 아니였지만
걷기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
함께 걸었던 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
세상 무엇보다 싫었던 일이지만
그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습니까
잊었다 생각했다가도 밤이면 속절없이 돋아나
한 걸음 걸을 때마다 천 근의 무게로 압박해 오는 그대여
하루에도 수십 번씩 당신을
가두고 풀어주는 내 마음감옥을 아시는지요
잠시 스쳐간 그대로 인해
나는 더 얼마나 흔들려야 하는지
추억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
그것이 다시는 올 수 없는 까닭이겠지만
밤길을 걸으며 나는 일부러
그것들을 차례차례 재현해 봅니다
그렇듯 삶이란 것은
내가 그리워한 사랑이라는 것은
하나하나 맞이했다가 떠나보내는 세월 같은 것
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만 남아
떠난 사람의 마지막 눈빛을 언제까지나 떠올리다
쓸쓸히 돌아서는 발자국 같은 것
그대여 그립다는 말을 아십니까
그 눈물겨운 흔들림을 아십니까
어디 내 생애
바람이 불지 않은 적 있었더냐
날마다 크고 작은 바람이 불어 왔고
그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
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곤 했다
기다리는 그 순간 때문에
내 삶은 더뎌 졌고
그 더딤을 만회하기 위해
나는 늘 허덕 거렸다.
이제야 알겠다 바람이 분다고
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
기다리는 이에게 바람은 더 드세게
몰아닥칠 뿐이라는 것을
바람이 분다는 것은
헤쳐나가라는 뜻이다.
누가 나가떨어지든 간에
한 판 붙어보라는 뜻이다
살다보니 바람 아닌 게 없더라
내 걸어온 모든 길이 바람길 이더라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