버리고 떠나기
- 법정스님 말씀 중에서 -
꽃은 무슨 일로 피었다가
지는지 알 수 없지만,
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때가
다하면 생을 막음하듯이
생명의 질서에서는
꽃이나 사람 다를바 없다
나무들은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
겨울이 오면 옷을 벗는다
꽃은 보는 사람에게
아름다움과 향기와 기쁨을 안겨준다
한 송이의 꽃이 메마르고 녹슬기 쉬운
우리들의 일상에 얼마만한
위로와 생기와 기쁨을 주는지
운치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은
시시로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
꽃이 있는 집과 꽃이 없는 집은
겉으로 보기에는
대수롭지 않은 것 같지만
그 안에서 살아가는
삶의 질에 있어서는
하늘과 땅만큼 현격하다
길거리에서 꽃을
안고 가는 사람을 보면
그 신분이 어떻든 간에
친밀감이 간다
그 사람의 꽃다운
마음씨가 엿보이기 때문이다
하와이에 가면 마중나온 친지들이
목에 레이꽃 다래를 걸어준다
그 향기가 진해서
야간비행에서 내리면
졸음이 활짝 깬다
그 곳 대학에서 강연을
한 일이 있는데 연단에 올라서자
이 사람 저 사람 줄줄이 올라와
꽃 목걸이를 걸어주는 바람에
얼굴까지 가리게 되어
한바탕 크게 웃었다
땅에 떨어지는 낙엽은
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
그냥 맞이한다
그것들은 삶 속에 묻혀 지낼 뿐
죽음 같은 것에
신경을 쓰지 않는다
그것들은 그대 그곳에
모든 것을 맡기고
순간순간을 있는 그대로 산다
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
우리 인간들뿐인데
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
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
삶은 순간순간 새롭게
발견되어져야 할 훤출한 뜰이다
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
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
그러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
순간순간의 있음이다
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
모두 한때일 뿐
그러니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
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
새롭게 발견되는 삶은
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.